스타트업에서 개발자로 일한다는 것

 

역시 세상에 완벽한 건 없어

 

  아직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인생에서 몇 가지 크고 작은 계기나 전환점은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이 그 중 하나이다. 학기를 마치고 정신없는 겨울 방학을 보내며 다음 개강을 코앞에 두고서, 번 아웃이 온 나는 갑작스럽게 하고 있던 모든 걸 그만두고 스타트업에 들어갔다. 반쯤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회사에 들어간지 벌써 6개월, 나같은 초짜 개발자가 스타트업에 들어가 일하면서 느낀 장점과 단점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먼저, 가장 좋은 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상하관계가 엄격하지 않고, 결정 사항도 많고, 도전적으로 행해야하는 것도 많기 때문에 매 회의 때마다 정말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어떤 아키텍쳐가 가장 좋을지, 어떤 프로그램을 새로 도입해볼 수 있을지, 어떤 가능성과 위험성이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토의하고 의견을 말하기 쉽다. 이건 내가 아직 회사에 완전히 적응하기 전인 입사 초반에도 그랬던 것 같다.

 

  또 다른 장점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듯이 빨리 많은 것을 익힐 수 있다는 점이다. 시간은 없고 필요한 것은 많으면 사람은 그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학습능력을 높힌다. 내가 속해 있는 스타트업의 경우 인원도 많은 편이 아니라서 내가 맡아야할 업무가 많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많은 것을 학습할 수 있다. 서비스를 하기까지의 전체적인 흐름과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에 대한 관점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상황 판단 능력과 대처 능력이 좋아진다. 예전에는 긴급한 상황에 처하면 마음은 급한데 어찌해야 할 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흔들리지 않는 편이고 차라리 그 시간에 빠르게 다른 방법을 고민하며, 혹여나 멘붕이 오더라도 비교적 빠르게 회복하게 됬다. 이건 다른 곳에서도 기를 수 있는 능력이지만 스타트업에서는 더욱 빠르게 기를 수 있는 것 같다.

 

 

  단점에 대해 말하기 앞서, 아래 내용이 모든 스타트업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 각 회사마다 규모도 다르고 구성원도 다르므로 당연히 그렇다. 이건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첫 번째 단점은 업무가 광범위하고 양이 많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이니 당연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렇다. 시간은 없는데 할 일은 너무나 많다. 그러다 보니 포기해야할 것들이 많다.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업무들 중에는 중요한 것들도 많다. 그저 우선 순위에 밀렸을 뿐이다. 나도 처음에는 포기하지 않으려 했지만 현실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또한 업무 자체가 광범위하다보니 어떤 분야에 대해 깊이있게 다루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 번째 단점은 자유도가 높은 만큼 책임져야할 것도 많다는 것이다. 내가 결정한 것, 내가 맡은 것은 끝까지 내가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그 결정들과 업무들은 나의 위치에 비해 너무 중요하다.

 

  내가 가장 큰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좋은 개발자로써의 요소를 배우기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좋은 개발 문화를 체득하고 있고 올바른 코딩 습관을 가지고 있으며 (말이 좀 모호한데) 충분히 개발자스러운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좋은 개발자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요소들 중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타트업에서는 시간이 부족하기에 내가 한 일들을 충분히 돌아볼 수 없고 체계화된 시스템이나 경험이 많은 사람부터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배우기 어렵다.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스타트업에도 규모나 구성원에 있어서 정말 다양한 회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도 스타트업에서 일하기로 했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있어서 정말 큰 장점이었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떤 것을 공부해야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스스로 찾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문적인 측면을 제외하고 좋은 개발자로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을 잘 배울 수 있는지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